지난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 강남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조 탄압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변화된 삼성을 보여주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과거 삼성 특검 이후 등장한 삼성 경영 쇄신안과도 달라진 모양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최근 준법경영과 노사관계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드러내며 변화를 꾀하고 있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영호 삼성물산 사장, 전영호 삼성생명 사장 등 삼성 계열사 사장단 20여명은 1일 오후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건전한 노사관계를 위한 강연을 들었다. 

문 위원장은 민주노동당 중앙위원과 당 대표를 역임했으며 전국노조협의회 사무총장, 민노총 금속연맹 위원장 등을 지냈다. 

이날 문 위원장은 ‘미래지향적 노사관계 형성’을 주제로 △한국노동운동의 특징과 역사 △노사관계의 변화와 전망 △건전한 노사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방향 △삼성 노사관계에 대한 외부의 시각 △바람직한 노사관계를 위한 제언 등을 강의하며 노사관계에 대한 삼성 경영진의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앞서 삼성은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역 교통 CCTV 첨탑 위에서 1년 가까이 고공농성 중인 해고 노동자 김용희씨(61)와도 합의를 이뤄냈다. 

김 씨는 1982년부터 창원공단 삼성항공(테크윈) 공장에서 일하다 경남지역 삼성 노동조합 설립위원장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1995년 5월 말 부당해고 당했다며 삼성을 상대로 사과와 명예복직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해왔다.

24년 넘게 투쟁을 이어오던 김 씨는 지난해 7월 10일을 한 달 앞두고 삼성전자 서초사옥 인근인 강남역 CCTV 철탑 위로 올라가 355일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다. 그는 이 기간 중 세 차례 단식 농성을 병행하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355일 동안 첨탑 농성을 마치고 내려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철탑에서 내려온 김 씨는 기자간담회에서 “삼성 측과 피해 문제 해결에 합의해 고공농성 투쟁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농성공대위 대표인 임미리 고려대 교수는 “지난달 29일부터 한 달간 삼성과의 협상을 벌인 끝에 어제 오후 타결이 됐다”며 “삼성이 고공농성을 조속히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과하면서 김 씨의 명예회복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삼성은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히고 김 씨 가족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며 “그 동안 회사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해 인도적 차원에서 대화를 지속했다”고 전했다. 이어 “뒤늦게나마 안타까운 상황이 해결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도움을 준 관계자들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삼성의 이같은 변화는 지난달 8일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후 나타난 변화다. 이 부회장은 이날 “삼성에 더 이상 무노조 경영은 없다”고 선언했다. 

이 부회장은 이밖에 준법경영에 대해서도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올해 초 삼성은 외부 감시기관인 준법감시위원회를 설립했다.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선임하고 삼성과 재벌경영에 비판적 의견을 가진 인사들을 위원으로 대거 등용했다. 

준법감시위는 협약을 맺은 삼성 계열사의 주요 현안에 대해 위법여부를 점검했다. 또 이 부회장에게 대국민 사과를 권고하며 삼성 변화의 불을 지폈다. 당시 준법감시위는 이 부회장에게 경영승계와 노조 문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권고했고 시민사회의 소통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전했다. 

이밖에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주요 계열사들이 준법실천 서약식을 갖고 준법경영의 의지를 강조했다. 서약의 주요 내용은 △국내외 제반 법규와 회사 규정을 준수하고 △위법 행위를 지시하거나 인지한 경우 묵과하지 않으며 △사내 준법문화 구축을 위해 솔선수범하겠다는 것이 담겨있다. 

또 2018년 11월에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백혈병 사망사고와 관련해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부회장)가 나서서 공식 사과하고 11년 동안 지속된 갈등을 마무리지었다. 

당시 김기남 부회장은 “소중한 동료와 그 가족들이 오랫동안 고통 받으셨는데 삼성전자는 이를 일찍부터 성심껏 보살펴드리지 못했고 조속히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며 “그동안 반도체 및 LCD 사업장에서 건강위험에 대해 충분한 관리를 하지 못했다”며 “병으로 고통받은 근로자와 그 가족분들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의 이같은 행보가 현재 진행 중인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유리한 형량을 받고 경영권 승계 수사에 대비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이 부회장과 삼성의 최근 행보는 이전과는 다르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선대 회장부터 이어져 온 무노조 경영을 깨고 오랜 갈등을 봉합했다는 점과 “자녀들에게는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점은 2008년 경영쇄신안과는 사뭇 다르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 오랜 갈등의 봉합…지배구조 개선은 여전히 과제

2007년 말부터 이어진 삼성 비자금 관련 특검 이후 다음 해인 2008년 4월 내놓은 삼성 경영쇄신안에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리움미술관장 등 오너 일가가 경영 일선에서 완전 물러나고 전략기획실을 해체하는 등 파격적인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당시 전무였던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 CCO에서 물러난 뒤 해외 사업장으로 옮겨 회사 업무를 지속했다. 

이 부회장 역시 국정농단 사태가 일어난 이후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이사회 권한을 강화했다. 또 무노조 경영으로 인한 노사갈등과 반도체 노동자 사망사고 등 오랜 과제를 풀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다만 지배구조 개선 요구에 여전히 묵묵부답이라는 점은 과제로 남는다. 2008년 경영쇄신안 당시에도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지배구조 개선은 언급되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2018년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삼성전자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언급했다. 

당시 삼성생명은 약 1조원에 해당하는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하며 김 위원장의 요구에 응답했으나 이후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같은 해 9월 삼성화재와 삼성전기가 각각 보유 중인 삼성물산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서 그룹 내 순환출자 고리 대부분을 끊어냈다. 그러나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지분 7.48%를 확보해 최대 주주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물산이 19.34%의 지분을 보유해 20.76% 지분을 보유한 이건희 회장에 이어 2대 주주다. 삼성물산은 이재용 부회장이 17.08%를 보유해 최대 주주에 올라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지분도 4.40% 보유해 2대 주주로 올라있어 이재용 부회장은 0.62%의 지분만으로 삼성전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보험사의 자산은 고객이 맡긴 보험료가 대부분인 만큼 국내 재계에서는 금융과 산업을 분리하는 금산분리 원칙이 적용돼있다. 고객의 돈으로 다른 회사를 지배하고 지원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삼성은 현재 이같은 금산분리 원칙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이를 개선하는 것이 이재용 부회장의 앞으로 남은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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