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붕 경제부장

'열정페이’로 불리는 청년 인턴들부터 시작해 시간제 알바생의 부당한 노동력 착취, 서로 소통이 안돼 발생하는 오해 등등… 세상살이에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많다.

수 년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知人)으로부터 최근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해 20여년간 근무하면서 저축한 돈과, 개인적인 재테크를 통해 모은 종잣돈, 그리고 은행 융자까지 받아서 지난 2년 전 사업가의 길로 뛰어들었다. 경기도 한 지방의 병원 장례식장을 인수해 장례서비스 사업을 시작한 것.

사업시작 후 처음 1년간은 호황이었다.

그러나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장례객수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혼자서만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상황이 그냥 내버려둘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 이유를 파악해보니, 병원 인근의 또다른 장례식장에 조폭 출신의 바지사장이 와서 시골 마을의 이장들을 겁박해 장례객들을 모두 그곳으로 빼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 장례객수는 1년차 때보다 70% 이상 감소해 그 조폭과 똑같은 방법으로 대응해 맞서 싸워야 할 상황에 놓이자 지인은 결국 올초 장례식장을 내놓기로 결심했다. 지인이 갖고 있는 종교적 가치관과 장례서비스를 통해 자신의 인생관을 펼치보고 싶었던 사업가로서의 신념을 또 다른 조폭과 손을 맞잡으면서까지 이어가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제약사들이 국내 제약사들을 상대로 휘두르는 ‘판권회수’도 비슷한 경우다. 한미약품, 유한양행, 녹십자 등 국내 상위제약사들의 연간 매출이 1조를 넘긴 지가 불과 2년 밖에 안된 상황에서 2000억원대가 넘는 다국적제약사들의 대형품목들이 계약만료로 하루아침에 판권회수 당하기가 일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 초 대웅제약은 미국의 다국적제약사 MSD로부터 당뇨병치료제 ‘자누비아’ 등 자누비아군을 비롯해 고지혈증치료제 ‘바이토린’, ‘아토젯’ 등의 판권을 잃었다. 자누비아군은 대웅제약이 시장초창기인 지난 2008년부터 MSD와 코프로모션을 해 온 제품으로 지난해 1000억원에 육박하는 처방실적을 기록했다. 

‘바이토린’과 ‘아토젯’의 지난해 합산 매출액도 약 600억원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650억원 규모의 뇌기능개선제 ‘글리아티린’까지 판권이 넘어감에 따라 대략 2250억원의 매출 하락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웅제약이 라이벌 제품을 도입하거나 복제약을 내놓으며 이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웅제약은 다음달에 특허만료되는 '에제티미브'를 겨냥해 최근 '크레젯'을 허가받았다.  크레젯은 판권회수를 당한 MSD의 '바이토린', '아토젯’과 스타틴 성분은 다르지만, 같은 계열이다. 대웅제약은 또 LG생명과학으로부터 DPP-4 억제제 '제미글로'에 대한 판권을 가져와 역시 판권을 뺏긴 '자누비아(시타글립틴)'에 대응하고 있다.

최근 바둑기사 이세돌(프로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와 세기의 대결로 전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이세돌 9단은 5전 1승4패로 승부에서는 졌지만, 기계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다시한번 입증하며 전 세계에 감동을 줬다. 1000대가 넘는 컴퓨터를 활용한 기능적인 바둑 수 계산으로 인간의 계산지능보다 더 앞섰던 알파고도 기존의 인간 바둑세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바둑세계를 펼쳤다. 이 바둑대결을 놓고 인간(이세돌)과 인공지능(알파고)이 모두 승리한 대결이었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국내 제약사가 시장초창기때부터 동고동락 하며 다국적제약사 도입 품목을 시장에 안착시키기 위해 애써오다 하루아침에 판권을 회수당하는 일처럼 억울한 일도 없을 것이다. 오리지널 의약품을 갖고 있는 외자사들의 이같은 ‘갑질(甲質)’을 알면서도 필요에의해 도입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제약계의 현실이다.

이에 따라 다국적제약사 도입 품목들은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언제든 판권을 회수 당할 위험이 있기에 국내 제약사들은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자체 개발 품목 확보 뿐만 아니라, 다국적제약사의 오리지널 품목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도입 다변화를 통해 '이세돌과 알파고'처럼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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